7장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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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용아거둔 선사에게 암두 선사가 묻기를, “그대는 공덕을 성취하셨는가?”
    하니 “성취한지는 오래되었으나 점안點眼(불교적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을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거둔 선사가 암두 선사에게 점안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저는 지금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송이 눈과 같습니다.” 하고 소견을 말하자 암두 선사가 “사자 새끼가 크게 포효하는구나.”했다.
    이에 덧붙여 암두 선사가 말하기를, “이번 생에서 쉬지 못하면 어느 때에 쉬리오. 쉬는 것은 금생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쉰다는 것은 망상이 없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올바르게 쉬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비유와 상징, 생략, 암시 등의 수사법을 활용할 뿐 아니라 때로는 고함치거나 때리기도 하는 등 색다른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선문답은 파격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이심전심의 공간을 읽어내는 묵계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이 깊어지면 눈으로 마음을 전하듯 이미 개념화된 문자를 빌려서 본의를 전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선사의 문답을 다시 곱씹어보자. 암두와 거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점안을 하겠다는 표현은 그 기량을 인정받고 싶다는 일종의 암시다. 그러하므로 스승이 그 기량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붉은 화로의 눈송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번뇌와 분별이 일시에 사라져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자 스승은‘사자 새끼라고 제자를 인정한다. 이렇게 선종의 대화는 함축적이고 알쏭달쏭한 짧은 대화 속에 따스함과 친절함이 배어 있다.
    암두 선사는 마음이 쉬는 것이 바로 망상이 없어지는 때라고 했는데 이 한 줄이 법어의 핵심이다. 흔히 선사들은‘깨어 있는 휴식’을 요구한다. 몸을 한가롭게 두는 것은 일종의 게으름이지만 정신을 맑게 하는 여유가 진짜 휴식이다. 즉,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하는 삶의 여백을 일러서 깨어 있는 휴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을 쉰다는 것은 아집과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경지인지도 모른다.

    작게 놓으면 조금의 평화가 오고,
    크게 놓으면 큰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완전히 놓는다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는다.
    그리하면, 그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리라. (아잔 차 스님)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의 방법이란, 바로‘쉬고, 또 쉬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현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마치 석공이 작품을 만들 때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내고 나면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듯, 행복을 방해하는 열등감과 불만족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선사들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주인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선사의 어록에 등장하는 불성, 청정, 진여, 무심이라는 단어들이 모두 참다운 주인공의 성품을 표현한 것이다. 무엇이든 노예가 되면 행복을 방해받는다. 돈이든, 명예든 그 순간 노예가 되면 나의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둔 선사가 말하는 행복의 비법은‘무심’하라는 것이다. 무심은 마음은 쉬는 것이고,
    열등감이 차분히 소멸된 상태다. 그래서 선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문 앞의 나무는 새가 앉거나 날아가는 것에 시비하지 않는다.
    오는 자에게도 무심하고 날아가는 자에게도 그저 무심하네.
    사람의 마음이 저 나무와 같다면 도와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라. (현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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